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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 하의진

제자훈련 조회 수 2972 추천 수 0 2013.10.22 02:10:36

헌신 - 하의진

 

 

 

 끝으로 e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f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의> 여러분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 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e. 그, 나의 형제들. f. 또는 안녕히 계십시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g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g.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기야, 나는 육체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잇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목표를 향한 달음질>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b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b. 또는 이미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어찌했든지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갑시다.
 - 빌립보서 3:1-16

 

 

 

 

 

 


‘헌신’이란?
 사전에는 “당신 자신을 한 가지 목표에 완전히 쏟는 것, 그리고 그 목표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는 스포츠계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이 그의 서신서 들에서 이런 예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주된 조건은 재능이나 은사가 아니라 헌신이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달음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고전 9:24-27)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13-14)

 

 


바울은 무엇에 그 자신을 헌신했는가?
 바울은 또한 썩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면류관을 획득하는 데 그 자신을 완전히 드렸다. 그는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상급을 얻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른다(요 17:3). 그것은 우리의 부활의 원천이요 목표일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이다. 그것은 그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간절히 바라던 한 가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갖는 것, 곧 그를 기쁘게 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사실 신구약 전체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헌신이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마 22:37)

 

 


 예수님을 아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마음
 헌신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요구하는 대가는 값싼 것이 아니다. 빌립보서 3:7-8에서 바울은 세 번씩이나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8절에서는 “그 모든 것을 오물같이 여겼습니다.”라고 말하며, 13절에서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누가복음 9:23-25에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 즉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를 바울이 자신의 말로써 표현한 것이다.

 

 

 

왜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겼는가?
 첫 번재 이유는 8절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할 때 그 밖의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심지어 오물과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9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한 나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의, 다시 말하면 믿음 위에 세워진 하나님으로부터의 의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당신에게 구원 곧 영생을 줄 수 없다. 당신의 가정 배경, 성경 지식, 열심 혹은 당신의 종교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당신을 구원시킬 수 없다. 따라서 구원의 한 방편으로써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유일한 구세주 되신 예수님과 비교해서 해로, 또는 쓰레기로 여겨야 한다.
 “사람이 온 세계를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망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 9:25)

 

 

 

바울은 어떤 것을 해로 여겼는가?
 5절과 6절에서 바울은 그 자신이 해로 여기는 것들을 길게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삶의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영역은 바울의 국가적 가정적 배경이다. 성경은 매우 분명히 우리가 부모와 친족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이다(딤전 5:8). 그러나 어떠한 가족 관계도 능가하는 하나의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이다. 다른 모든 관계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에 놓여져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35-38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그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께 대한 충성은 결국 당신의 가정에 축복을 가져 올 것이므로, 그들에 대한 사랑의 행동이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보이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두 번째 영역은 바울의 교육적 배경이다. 그는 자신이 바리새파 사람이었지만 그런 지위를 해(loss)로 여겼다(5절). 무엇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가? 당신의 지식이나 학위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가? 즉 학문 연구에 있어서 당신은 어디에 헌신하고 있는가? 당신은 받은 직위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 매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 경제학, 정치학, 심지어는 신학에 관해서는 잘 알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들의 지식이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아는 지식에까지 이르지 못함을 볼 때 우려가 된다. 삶의 모든 영역 - 물론 과학까지도 - 이 예수님과 연관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의 주(主)이시며,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역은 바울의 종교적 배경이다. 물론 바울은 기도, 경전 읽기, 금식 등과 같은 종교적 의무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결국 여기에서도 중요한 점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로 우리를 이끄는가?”하는 문제다. 우리의 종교적 의무는 너무나 쉽게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교회 집회로부터 성경 연구 모임, 혹은 기도 모임에 이르기까지 이리저리 부산하게 좇아 다니다가 그 모든 것의 목적, 곧 예수님과의 만남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습 속에서는 모든 것이 -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은 - 하나님께의 의식(儀式), 곧 행해야 할 하나의 의무가 된다.
 동시에 우리의 종교적 규례 준수가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구원의 방편인 양 여겨질 수 있다. 우리의 기도와 교회 출석, 십일조 등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고 흔히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님께는 우선적으로 헌신하지 않으면서 교회에는 헌신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하자.

 

 마지막 영역은 바울의 야망 및 꿈이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뿌리채 근절시키고자 하는 이 한 가지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그의 모든 계획, 활동, 사고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야망이 희생되어야만 했다. 이유는 단지 그것이 하나님의 야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야망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되는 순간, 그 밖의 모든 야망들은 이차적인 것이 된다. 결국 질문의 핵심은 “이 모든 것의 이면에 있는 나의 동기는 무엇인가? 곧 예수님을 아는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이다.

 

(1) 바울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동기, 야망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다!
(2) 그리스도께 헌신한다는 것이 곧 지식, 문화, 혹은 취미를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의 주(主)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3) 자기 부인(self-denial)을 구원에 이르는 길처럼 보는 것을 경계하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9절 하반절).
(4) 헌신을 바쁘게 사는 것으로 혼동하지 마라! 예수님을 아는 데에 헌신한다는 것은, 그를 기쁘게 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고난에 대한 두려움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기를 꺼려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헌신의 결과로 배척과 박해가 초래될 수도 있다! 바울은 10절에서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여 그가 죽으신 모양대로 죽어”라고 말한다. 예수님과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헌신함으로써 똑같이 고난과 죽음을 당했다. 바울은 투옥, 태장, 굶주림 등의 고통을 겪었다. 예수님과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같이 고통을 당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눅 9:23)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벧전 2:21)
 고난은 예수님을 아는 데에 헌신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이다 (또한 마 10:15-25; 요 15:20, 21; 딤후 3:12; 벧전 4:12, 13, 16절을 보라).
 물질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인 번영만을 약속하는 ‘성공-복음(success-gospel)'을 경계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진리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부분에는 예수님 이름에 뒤따르는 고난, 배척, 박해가 있다. 축복은 우리가 완전히 헌신할 때, 곧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에만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다! 즉, 십자가가 없다면 면류관도 없는 것이다.

 

 


헌신의 기쁨
(1) 무엇보다도 기쁨의 근원에 주목하라. 우리가 기쁨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환경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예수님은 변치 않는 분이시다.
(2) 예수님을 아는 데 헌신하는 것은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그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10절)!
(3) 헌신은 자유를 가져온다. 예수님께 대한 지식, 곧 그를 기쁘게 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주된 관심사가 될 때, 당신은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헌신함으로 인해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고난이 뒤따르지만, 결국 자기 부인은 자유가 되고, 십자가는 권능과 기쁨이 된다!
(4) 헌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자기 부인(해로 여기는 것)과 십자가(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 향하여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이다.”(14절) 우리가 그 밖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고난을 가볍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숨겨진 보화와 진주이다! 헌신이 초래할 수 있는 그 대가와 고난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담고 있는 그 상과 보물과 진주와 비교할 때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롬 8:18)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시적인 가벼운 환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큰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기 때문입니다.”(고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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