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 Login

Language : 한국어


성경의 권위 - 존 스토트

제자훈련 조회 수 3394 추천 수 0 2013.10.21 20:19:50

성경의 권위 - 존 스토트

 

 

 

 

 

구약

 예수님은 구약의 신적인 기원과 영원한 타당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셨다. 산상수훈에서 그는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실로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율법은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 5:17, 18; 눅 16:17을 비교하라) 그리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는 것이다.”(요 10:3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직접적 언급에 덧붙여 간접적 증거를 - 그가 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하던 일정한 공식에 담겨 있는 - 추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시편 110편을 인용할 때 “다윗이 성령 안에서 말씀할 때[즉 성령에 의해서 감동받은]”(마 12:36)라는 서문을 달았으며, 창세기 저자에 의해서 쓰여진 결혼에 관한 말씀을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창조주 자신의 말씀으로 돌렸다(마 19:4, 5).
 그렇지만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개인적으로 말씀을 사용하신 방식이었다. 그가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귀중하게 보았다는 사실은 성경이 그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성경에 대해서 단지 말씀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하셨다.


 첫 번째 예는 개인적 의무의 영역이다. 에덴 동산의 이브는 사탄의 꾐에 넘어갔지만 광야의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소리치셨다. 그 이유는 “성경에 너희는 ~ 하지 말지니라고 쓰여 있다.”라는 사실에 근거하였다. 성경이 명백히 금지하는 사항은 그에게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논쟁의 여지나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단호히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려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하고 기록된 대로 행해야만 했다.

 두 번째 예는 공중 사역의 영역이다. 물론 공중 사역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여러 시편과 예언서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아들, 기름부음을 받은 왕, 고난받는 종, 영광의 인자임을 알았다. 또한 이런 여러 상(像)들을 통해서 먼저 섬기고 고난받고 죽으심에 의해서만 영광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세례받을 때 하나님의 음성 곧, “너는 내가 기뻐하는 나의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들음으로 더욱 확증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사탄은 광야에서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만일·····만일·····”이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것은 그의 마음 속에 그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의심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서 그를 고통스러운 정체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혹은 그의 사역을 통하여 줄곧 계속된다. 또 다른 위기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자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배척받아 죽게 되리라.”고 가르치실 때, 베드로가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마 16:22)라고 반박했을 때 다가왔다. 즉시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는 격렬한 말씀으로 베드로를 질책하셨다. 그는 베드로의 말 속에서 사탄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그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동일한 문제였다. 다시 한 번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검을 빼어 들고 예수님의 체포를 막으려 함으로써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예수님은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당장에 열 두 군대 이상의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이제 내가 당하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질책하셨다. “인자가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라는 말씀 속에 나오는 “~해야만 한다”(must)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 그에게 부과한 필연성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에게 구원자의 역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꺼이 이를 실천하려 하셨다.

 예수님께서 개입하신 세 번째 질문 영역은 공개 논쟁이었다. 복음서를 읽는 독자는 누구나 복음서 중에 많은 공개 논쟁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때때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와 같은 진심에서 우러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이 경우 예수님의 대답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는 되받아 물으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눅 10:25, 26) 또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만하게 다루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그들의 전통을 부가하였고 사두개인들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제거하였다. 두 부류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성경이 지닌 권위를 경홀히 여겼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공허하게 만든다고,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성경에 무지하다고 질책하셨다. 두 경우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반박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을 심판관으로 여기신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다. 성경에 대한 견해를 펼칠 때와 그것을 인용하실 때 그는 전적으로 그리고 겸허하게 성경 말씀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셨다.

 

 

 

 


신약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모두 똑같이 신의 계시를 나타내는 기관(organs)이었다. 그런 자격으로 그들은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엡 2:20; 3:5). 예수님은 그의 사도들이 그를 대변하고 그의 권위를 갖고 그의 이름으로 가르치도록 보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것이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마 10:40; 요 13:20 참조). 신약을 편쳐 예수님의 사도들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사도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위해서 삼중적인 소양이 부여됐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들의 친명(親命)이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에 의해서 친히 선택받아 임명되어 권위를 부여받았다. 열두 사도의 경우에는 이 사실이 더욱 명백해 진다. 선택 가능한 매우 많은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은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는 이름을 주셨다.”(눅 6:13)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로 명백하였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기록하고 있는 기사들중 하나에는 사도 임명에 대한 바로 그 말들이 쓰여 있다. 즉 “내가 너를 사도로 삼는다.”(ego apostellose)는 말이 기록되어있다(행 26:17). 또한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사도직을 강력히 변호하고 있다(갈 1:1).

 

 둘째,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다.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내보내어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막 3:14). 함께 있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연후에야 말씀을 전파하도록 보내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파하는 내용은 그들이 보고 들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후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너희도 나의 증인들이다. 그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나와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요 15:27) 그래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가 왔을 때 베드로가 설정한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에, 곧 요한이 침례를 주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우리와 더불어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행 1:21-22)

 

 셋째, 사도들은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았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들의 가르치는 사역과 관련하여 매우 특별한 성령의 사역을 약속하셨다. 즉 성령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모두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가르치시실 것이며, 실로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요 14:25, 26; 16:12, 13)이라는 것이다. 이런 크나큰 약속들은 분명 복음서와 서신들이 기록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행해졌을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도들이 위의 사실을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초대 교회에서 구약과 더불어 그들이 쓴 편지가 공개적으로 읽히도록 명하였다[(예) 골 4:16; 살전 5:27; 계1:3]. 바울은 그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살전 2:13). 또한 “우리가 받은 그 선물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적인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고전 2:13).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명백히 말하였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 증거를 나타내어 보일 것입니다.”(고후 13:3, 10절 참조)

 다른 사도들을 향하여서 베드로는 그가 전파하였던 복음을 밝히고, 또한 그 복음에 의해서 그가 개종시킨 신자들이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벧전 1:22-25). 그리고 요한은 자신과 동료 사도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전할 뿐만 아니라(요일 1:1-4), 사도들이 처음 가르친 것이 모든 시대를 위한 규범적인 것임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가 기록한 책을 읽는 신자들에게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언제나 마음 속에 간직하시오.”라고 계속적으로 권하였다(요일 2:7, 24). 실로,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주된 기준은 사도의 가르침에 부합되는지와 사도의 권위를 따르는지에 대한 여부였다(요일 4:6; 요이 9, 10; 요삼 9, 10).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부여 하셨고 사도들 스스로가 인식하였던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우리가 오순절날 새로이 성령 충만해진 교회에 대해서 듣는 첫 번째 사실은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사귀며 함께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행 2:42)이다. 성령 충만한 교회들은 항상 그러하였다. 사도 시대 이후의 교부들은 사도들이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음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a)는 1세기 말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사도들은 우리들을 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자이고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오신 자들입니다.”(para.5) 2세기 초에 안디옥의 주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로마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나는 베드로와 바울처럼 여러분에게 계명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었지만 나는 단지 책망받아야 될 사람입니다.”(chap. 4, trallians chap. 3, Magnesians chap. 13, Ephesians chap. 3) 얼마 후인 주후 200년 경에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Tertullian)은 훨씬 더 명백하게 피력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의 권위에 의해서 어떠한 것을 소개하거나, 사도 외의 사람들에 의해서 소개된 것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권위는 주님의 사도들입니다. 사도들 자신은 그들 스스로의 권위에 의해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충실하게 세상 만민에게 전하였습니다.”(Prescriptions against heretics, chap. 6)

 

 신약의 정경을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와 특히 어떤 책을 배제해야 할지를 결정함에 있어서 모든 문제시되는 책에 대한 가장 우선적인 질문은 사도적 권위의 여부였다. 즉 “이 책이 사도에 의해서 쓰여졌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도의 주위 사람들이 썼고 사도의 가르침을 대변한다는 그 책 속에 사도의 승인이 담겨 있습니까?” 결국 정경 선택의 시금석은 사도적 권위에 대한 것이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반면에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다.

 

 주된 문제는 성경의 권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다. 그 분이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우리가 구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사도들을 임명하여 권위를 부여하여 “너희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찌 우리가 사도들을 배척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구약의 권위와 신약의 권위 가운데 어느 한 쪽이라도 거부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궁극적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추론


 성경의 권위에 대한 질문은 매우 개인적이며, 실제적이며, 현시대적인 적실성을 지닌 문제이다. 이 문제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얼마나 본질적인 면을 차지하는지를 다음의 네 가지 추론을 통하여서 보여 주고자 한다.

 

 첫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기초가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예배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진리로’(in truth) 예배드려야 한다(요 4:24).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가 보이신 성품을 찬양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진정한 믿음은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표현하시는 하나님을 신회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신뢰의 기초는 진리 -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그가 진리로 충만하시다는 것 - 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켜야 될 율법과 계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순종은 불가능하다.
 만일 하나님의 약속을 알지 못한다면 주 안에서의 소망을 어떻게 지닐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세속적 낙관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 위에 서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기쁨이 가득 찬 마음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의 네 가지 기본 요소인 예배, 믿음, 순종, 소망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관련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성품 위에서, 믿음은 그의 신실하심 위에서, 순종은 그의 계명 위에서, 그리고 소망은 그의 약속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 신실하심, 계명, 약속은 모두 성경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성숙한 자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위치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통합성(integrity)에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믿음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가장 통합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진리이다(롬 10:9; 고전 12:3; 빌 2:11). 그리스도인은 입술로 예수는 주시다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 - 의견, 신념, 기준, 가치관, 욕망 그리고 모든 것 - 을 예수님의 절대 주권 아래에 맡기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따르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우리는 타협적인 선택적 복종이라는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선택적 복종은 참 복종이 결코 아니며 그 속에 자만과 자의(自意)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자만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딤전 6:3, 4; 딛 1:6, 10). 거짓 가르침, 즉 반(反) 성경적인 가르침은 미성숙, 거만, 훈계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주 그리스도께 기꺼이 드리지 않으므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충분히 따름으로써 우리는 통합성이라는 참 원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셋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기초가 된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복종과 자유는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말하자면 자유롭기 위해서는 모든 권위에 저항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이건 윤리적이건 어떤 율법에 복종한다는 것은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적 자유는 진리와 동떨어져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과학적이건 성경적이건 간에 그 진리에 복종함에 따라 발견된다. 사람이 진리에 복종할 때 거짓에서 자유하게 되며, 인간의 허위와 사탄의 거짓말과 스스로의 주관적인 불안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며, 또한 실존 경험이라는 가변적인 기초와 세상의 가변적인 풍조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 참 자유이다. “너희가 내 말대로 살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요 8:31-36) 자유는 제자도 안에서 발견된다.

 

 넷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기초가 된다.
 오늘날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는 세상이 교회의 필요성에 대해 각성하면 할수록 교회는 그 사명에 대한 확신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감되고 있는 기독교 선교의 주된 이유는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확신의 상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큰 확신 속에서 예수님이 만군의 주이며 그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증언해야 하며, 또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마 28:18, 19).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使者)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두려워 말고 힘써 소리를 높여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공포해야 될 책임이 있다(사 40:9; 52:7).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야 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세상에 알려야 할 목소리와 그 목소리 뒤에 있는 생명과 사랑이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 요한과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쁘게 증거하며 세상이라는 메마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막 1:2, 3; 요 1:6-8; 3:30).

Share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제자훈련 성경의 권위 - 존 스토트 이하원 2013-10-21 3394
42 제자훈련 누가 나의 이웃인가 - 존 스토트 이하원 2013-10-21 2970
41 제자훈련 헌신 - 하의진 이하원 2013-10-21 2950
40 제자훈련 섬김을 위한 부르심 -레이 후 - 소책자 시리즈 이하원 2013-10-21 3582
39 일대일 양육 일대일 성경공부 2기-2차 수료대상자 모임 (3/20) - (필수과정입니다.) 이성윤 2011-03-13 9558
38 제자훈련 기독교세계관 세미나5-우리 시대의 우상들 file 김경민 2010-12-13 11975
37 제자훈련 기독교세계관 세미나 4 - 창조,타락,구속 file 김경민 2010-11-14 12103
36 제자훈련 기독교 세계관 세미나 3 - 그리스도인의 영성 file 김경민 2010-11-14 12301
35 제자훈련 기독교세계관 세미나 2 -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구원개념 file 김경민 2010-11-08 11438
34 제자훈련 기독교 세계관 세미나 1 - 기독교 세계관이란? file [1] 김경민 2010-11-06 11029
33 일대일 양육 일대일 제자 양육 성격공부 전 병희 2010-10-24 10238
32 일대일 양육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읽고 조성희 2010-08-31 12040
31 일대일 양육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읽고 조성희 2010-08-31 10590
30 일대일 양육 일대일 성경공부 1기가 끝났습니다! [1] 이성윤 2010-07-31 10545
29 일대일 양육 하나님의 임재연습 - 로렌스 형제 file ㅇㅎㅎ 2010-07-21 10682
28 일대일 양육 '잡초의 힘'-전병욱 ㅇㅎㅎ 2010-07-18 10299
27 제자훈련 하나님의 설복 (로마서 강해) -박 영선 지음- [1] 백호선 2010-07-15 11987
26 일대일 양육 전병욱 목사님의 '낙타 무릎'을 읽고 조성희 2010-07-14 10383
25 제자훈련 세 왕 이야기 (진 에드워드) 송영찬 2010-07-11 11080
24 일대일 양육 일대일 양육훈련 스케쥴 하수만 2010-07-09 9844